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역사 그루터기 2017. 5. 15. 06:43




    영화 '화려한 휴가' 보셨나요? 바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역사적 배경부터 살펴볼게요.


    역사적 배경

     

    1979 1026 5.16 군사정변으로 대통령이 박정희는 연회 사살됩니다.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지 19 만입니다.

     


     

     

    사건 직후 군대가 나라를 장악했고,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 전두환에게 사건조사를 지시하게 됩니다.

     


    10.26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 

     

     

    사건을 조사하던 전두환 일당은 2달도 지나지 않은 같은 1212일에 군사반란을 일으킵니다

    5.16 이후 일어난 번째 국가전복 사건입니다

    탱크를 앞세워 반란을 것이지요.


     


     

    1980년 초부터 전두환은 언론 정보기관을 장악합니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아버린 것이지요

    한편으론 3월부터 충정훈련이라는 공수부대 군사 훈련도 실시합니다

    시민들이 들고 일어날 경우 군대를 투입하겠다고 때부터 계획한 것일까요? 끔찍한 일입니다.


    517 비상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합니다. 학교에는 휴교령을 내려 학교에 나가지 못하게 했고

    국회는 군대의 힘으로 봉쇄해 버리고 유력한 정치인은 가두어 버립니다.

    그에 대한 반발로 학생들도 5월부터 학교에 나와 정문에서 시위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대학생들이 외쳤습니다.

    "전두환은 퇴진하라!"

    "비상 계엄 해제하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처음에는 광주 시민들도 시위에 소극적이었습니다

    그저 학생들이 외치는 소리를 발치에서 듣고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군권력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겠지요.

    이에 대해 정부는 군대를 투입합니다

    공수부대를 전남 대학교 정문에 보내어 시위하는 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고등학생들

    지나가던 시민들까지도 사정없이 때리고 짓밟고 죽였습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 보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있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들이닥쳐 사람들을 닥치는데로 때리고 죽이고 하잖아요

    이를 직접 겪은 광주시민들. 바로 옆에서 목격한 고등학생들은 이상 가만히 있을 없다고 생각합니다.


    19일부터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는데요

    대학생 중심이던 시위에 계엄군의 폭력에 분노한 광주의 일반 시민들과 

    고등학생들까지 거리로 뛰쳐나오게 되지요

    군대의 진압이 폭력적일수록 사람들은 많이 거리로 나와서 


    20일 시위대의 규모는 20만 명 이상에 이르게 됩니다.

     

    광주 시내 택시, 일부 시내·시외 버스 200여 대가 계엄군의 진입로를 가로막기도하지요..

    그럼에도 공수부대원들은 시민들을 진압봉이나 총의 개머리판으로 무차별 구타하고 

    대검으로 찌르고 옷을 벗기는 등 과격진압을 합니다.


    21에는 군대가 시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눕니다

    거리에서 시위하는 시민들을 향해 군대가 집단 발포를 합니다

    전쟁 중도 아니고 평화 시위하는 시민들에게 총을 발사해 죽인 것입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건물 위에서 시민들을 조준 사격했다는 것입니다

    명씩. 명씩. 시위를 해산시키는 목적으로 겁을 것이 아니라 살인을 것이지요.

    놀란 시민들은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찰서와 파출소의 예비군 무기고를 열어 총을 들고 무장해, 시민군을 결성합니다.

     

    이에 정부에서는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1980년 5월 21일 19시 30분에 광주시 외곽 도로망을 완전 차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옵니다

    광주시를 고립시키려는 작전입니다.

    그에 따라 22일부터 광주시는 완전히 봉쇄당합니다

    자동차 도로가 차단된 것은 물론이고 전화나 편지 왕래도 막혀버린 것입니다.


    해방광주

    경찰과 군대가 물러간 광주. 혼란 상황이었을까요

    경찰이 없으니 사람들이 상점에서 도둑질해가고, 은행을 습격해 돈을 빼앗으려 했을까요?


    정반대의 상황이 일어납니다

    사건 사고가 건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물건값이 오르기 때문에 물건을 미리 사놓고 비싸게 파는 '매점매석' 행위도 건도 없었습니다

    광주 시민들은 주변에 다친 사람을 돕고,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만들어 나누어 줍니다.  


     "인류 역사에서 보기 어려운 일이었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지. 

    무기가 수천 정이 풀렸는데 강도 사건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물자가 부족했지만 아무도 매점매석한 사람이 없었고. 

    그게 바로 대동세상이죠. 

    그때를 생각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어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말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47822&CMPT_CD=P0001

     

    전남 도청을 지킨 사람들과 광주 재진입작전


    5월 27일 새벽 군인 25,000명을 투입한 계엄군의 작전이 시작돼었습니다.

    탱크를 앞세운 군대가 광주시내로 들어옵니다.

    시내에서는 여성이 확성기를 잡고 외롭게 외칩니다.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애절한 하고 떨리는 목소리가 광주의 골목에 퍼지고 있을 무렵.

    새벽 2시 광주 시내로 들어온 계엄군은 전라남도 도청에서 일방적으로 1만여 발을 사격해 끝까지 남아 항전하던 시민군을 살상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특히 87년 6월 항쟁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6 항쟁은 군부 독재가 물러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은 95년 5·18특별법으로 제정되었으며, 

    전직대통령이었던 전두환, 노태우 등 92명이 내란·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처벌받기까지 전 국민의 염원이 모여 5·18민주화운동 정신계승으로 이어졌습니다.

    5·18민주화운동으로부터 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광주를 비롯한 전 국민이 보인 저항과 참여, 

    연대의식은 오늘날 세계 곳곳에 중요한 민주화운동 사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1년 5·18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